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짧은 금발머리, 검은 가죽 자켓 80년대 펑크록, 빌리아이돌

빌리 아이돌은 1955년 영국 출생이다. 그는 전형적인 펑크록 스타일인데, 찢어진 청바지와 치렁치렁한 목걸이, 가죽 벨트, 징 박힌 재킷, 짧은 금발 머리가 바로 그것이다.  

빌리 아이돌은 1977년 제네레이션X (Generation X) 싱글 앨범으로 데뷔했다.
대학교 2학교 시절 4인조 펑크록밴드 <첼시>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지만 얼마 안 되어 베이시스트 토니 제임스(Tony James)와 함께 팀을 탈퇴하고, 보컬리스트 진 악토버(Gene October)와 17세 기타리스트 밥 앤드루스(Bob Andrews)를 영입하여 4인조 펑크록 밴드인 제네레이션X를 결성한다. 

그 후 빌리는 영국에서 펑크록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80년대 초 뉴욕으로 이주하여 세장의 앨범을 발매했다. 1981년 EP앨범 <Don’t stop>발표하는데 그 중 ‘Dancing with myself’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. (EP앨범: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 전 정규앨범에 수록할 곡 3-4곡을 추려서 싱글 앨범처럼 내는 이른바 테스트용 앨범)

1982년 자신의 솔로 데뷔 앨범인 <Billy Idol>을 발표, 수록곡 중 ‘white wedding’이 빌보드 36위, 두 번째 싱글 ‘Hot in the city’가 빌보드 23위, 세 번째 싱글 ‘Catch my fall’도 빌보드 29위가지 진출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한다.


이 앨범은 빌보드 6위까지 오르며 더블 플래티넘(200만장)을 기록했다.
1984년 발표한 앨범 <Rebel Yell> 수록곡 ‘Eyes without a face’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.

1986년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<Whiplash smile>에서도 ’To be a lover’(6위), ‘Sweet sixteen’(20위), ‘Don’t need a gun’(37위)의 히트곡을 내고 이 앨범 역시 차트 6위, 플래티넘(100만장)을 기록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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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데 1987년 희한한 경우가 발생했다. 데뷔 앨범 발매 이전에 발표했던 EP앨범의 스튜디오 버전에 수록되었던 ‘Mony mony’가 뒤늦게 히트하며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.


그동안은 무명이라서 히트하지 않다가 인기가수가 되면서 나중에 인기를 얻게 된 것이었다.  ‘Mony mony’는 원래 2집 앨범 발표 후 1985년 유럽에서 리믹스 앨범이 발표되어 재수록 되었고, 미국에서는 라이브 버전으로 수록되어 1987년에 발표된 적이 있다. 미국에서 발표된  리믹스 앨범에서 이곡이 큰 인기를 끌면서 이 앨범이 차트 10위까지 오르며 역시 플래티넘 기록을 세웠다.

1990년 네 번째 앨범 <Charmed life>에서 ‘ Cradle of love’가 빌보드 2위에 오르고 또 한펀 플래티넘을 기록했다. 그러나 1993년 다섯 번째 앨범은 대실패로 끝나면서 그는 약물중독으로 인한 침체기를 보내게 된다. 2005년 12년 만에 6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현재까지 활동하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는 소식이 없다. 
 
비하인드 스토리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<터미네이터2>를 찍기 전에 인조인간 T-100의 역할로 어울리는 사람을 빌리 아이돌로 찍었는데 오토바이 사로고 무산됐다는 이야기가 있다.
  

강렬한 일렉트릭 기타, 시원한 드럼 비트와 어우러진 그의 샤우팅이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준다.

 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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